[벚꽃명소] 벚꽃은 집돌이도 집을 나서게 한다

벚꽃이 뭐라고, 주말 아침부터 난리를 쳤을까

30대 후반 들어서면서, 외출보다는 집에서 소파랑 한 몸이 되어 넷플릭스나 유튜브 보는걸 가장 선호하게 된 본인. 그런데 4월만 되면 세상이 온통 핑크색으로 변하니까, 가만히 있는 저를 와이프가 가만두질 않더라고요. 그리고 저도 조금이라도 젊을때 사진 많이 찍어두면 좋다는 생각을 해왔어서, 무거운 몸을 일으켜서 나갔다왔습니다.

사실 이번엔 좀 편하게 가고 싶었어요. 작년에는 멋모르고 유명하다는 곳에 갔다가 주차만 3시간 하고, 밥먹는 곳 찾을때도 쉽지않았다는 경험이.. 석촌호수, 서울대공원 등.. 부들부들

그래서 올해는 전략을 좀 바꿨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그런 곳 말고, 그냥 집에서 멀지 않은 곳 중에서 적당히 나무 많은 길을 찾아보자고 했죠. 지도를 뒤져보니까, 의외로 동네 하천 옆길이 벚꽃 명소 못지않게 나무가 빽빽하단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유명한 곳은 다 이유가 있지만, 효율을 챙겨야 한다

막상 길을 나서니 마음이 설레긴 하더라고요. 창문을 내리니까 봄바람이 훅 들어오는데, 겨울내내 찌들어있던 사무실 공기가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달까요? 아침형 인간인 저희 부부는 아침 일찍부터 나섰는데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역시나 명소 근처로 가는 길목은 이미 주차장이 따로 없었습니다. 차들이 줄지어 서 있는 걸 보면서 ‘아, 역시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구나’ 싶었죠. 저는 과감하게 핸들을 꺾어서 미리 봐둔 동네 뒷길로 향했습니다.

여긴 정말 한산하더라고요. 물론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화려한 축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대신 저희 부부만의 고요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벚꽃이 눈처럼 흩날리는데, 그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했거든요. 와이프도 처음엔 “여기 너무 휑한 거 아니야?”라고 투덜대더니, 막상 걷기 시작하니까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더라고요. 남들 뒤통수 피해서 셔터 누를 필요도 없고, 그냥 서 있는 그 자리가 바로 포토존이 되는 마법을 경험했단 사실.

동네에서 발견한 멋진 벚꽃나무 사진
동네에서 발견한 멋진 벚꽃나무

커피와 함께 완벽했던 4월의 오후

한참을 걷다 보니 다리도 좀 아프고 목도 마르더라고요. 근처에 예쁜 카페도 꽤 있어서 커피를 하나씩 테이크아웃해서 벤치에 앉았습니다. 벚꽃잎이 하나씩 툭 떨어지는 걸 보면서 마시는 커피 맛은 정말.. 이 자체가 천국 그 자체였죠!

옆 벤치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계시고, 앞에서는 강아지 한 마리가 꽃잎을 쫓아 뛰어다니는 평화로운 풍경. 이게 진짜 벚꽃놀이지 싶더라고요. 괜히 사람 많은 데 가서 기 빨리고 돈 쓰고 올 필요가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와이프랑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 회사에서 빡쳤던 일들 털어놓다 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습니다.

만개한 벚꽃과 맑은 하늘이 보이는 사진
만개한 벚꽃과 평온한 하늘

화려함보다 소중한 건 같이 걷는 사람의 온도

해가 지기 시작하니까 벚꽃색이 더 짙어지더라고요.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 들어오는데, 낮에 볼 때랑은 또 다른 몽환적인 분위기가 났습니다. “오늘 오길 잘했지?”라고 묻는 와이프의 얼굴을 보니 이런게 행복이구나 싶었어요. 결국 꽃 구경이라는 게 꽃 자체를 보는 것도 좋지만, 사랑하는 사람이랑 발맞춰 걷는 그 행위 자체가 중요한 거였단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엔 차도 안 막혀서 아주 쾌적하게 귀가했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샤워하고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니까, 이번 주말은 정말 알차게 보냈다는 뿌듯함이 밀려오더라고요. 30대 후반, 이제는 화려한 축제보다는 이런 소소한 일상 속의 힐링이 더 절실해지는 나이인가 봅니다.

내년 벚꽃놀이를 준비하는 당신에게 전하는 꿀팁

여러분, 벚꽃 명당은 멀리 있지 않더라고요.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화려한 장소들에 현혹되지 마세요. 거긴 이미 다른 사람들의 차지가 된 지 오래니까요. 차라리 지금 당장 지도 앱을 켜고 집 주변에 ‘산책로’나 ‘하천’을 검색해 보세요. 생각지도 못한 나만의 비밀 장소를 찾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옆에 있는 사람의 손을 꼭 잡고 천천히 걷는 마음의 여유라는 점, 잊지 마시고요.

오늘 제 두서없는 일상 이야기가 여러분의 4월에 조금이나마 여유를 더해줬으면 좋겠네요. 꽃은 금방 지지만, 그날의 분위기와 감정은 꽤 오래 남는 법이니까요. 다들 이번 주말엔 너무 무리하지 말고, 딱 기분 좋을 만큼만 꽃구경 다녀오세요. 엔지니어 알초는 다음에도 또 사람 냄새 나는 현실적인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럼 모두 행복한 봄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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